▲ 제68회 칸 영화제 폐막식에 모인 수상자들

지난 5월 23일(프랑스 현지시간) 제 68회 칸 영화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총 19편의 공식경쟁작들이 12일간 상영됐습니다. 


정치적인 문제에 주목하다

황금종려상은 프랑스 영화 <디판 Dheepan>이 받았습니다. 스리랑카 이민자들의 삶을 담은 영화입니다. 정식 시민권을 받기 위해 가족 행세를 하던 두 남녀와 한 아이가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위해 파리 외곽으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라고 합니다. 감독인 자크 오디아르는 지난 2009년 <예언자 A Prophet>를 통해서 이민자 문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감독은 국내 영화매체와 인터뷰에서 “어떻게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라고 이 영화를 설명했습니다(씨네21, '자크 오디아르 인터뷰', 2015.06. No.1007).

▲ 제68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디판 Deepan> 스틸컷

외신들은 올해 1월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디판>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2월에 열린 베를린 영화제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영화를 황금곰상 수상작으로 선정한 것과 연장선에 있다고 봅니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 베를린 영화제는 이란 정부에 의해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반체제 감독에게 최고상을 수여한 것이죠. 표현의 자유 논쟁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듯이 말입니다. 

이에 반해 칸 영화제는 프랑스의 오랜 사회문제인 이민자 사회통합이라는 보다 현실적인 사안에 방점을 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지난 4월에 발생한 지중해 난민선 침몰 사건으로 유럽 전체가 난민 문제에 골머리를 앓게 된 일도, 이번 <디판>의 황금종려상 수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동시대 유럽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영화의 역할'이라는 칸 영화제의 테마에 비춰본다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다양한 영화, 비슷한 이야기

 제68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 코엔 형제

올해는 작품이나 감독의 국적 등에서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고자 노력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보다는 유럽과 아시아 영화들을  많이 배려했죠. 경쟁부문의 출품작들만 보면, 유럽, 아시아, 남미 영화들의 비율 맞추기가 느껴집니다. 최근 칸 영화제의 지나친 상업성을 여러 비평가들이 비판한 한 일이 이런 변화를 가져 온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갈 길이 아직은 멀어보입니다. 경쟁부문 19편 중에서 영국, 미국, 프랑스가 제작하거나 해당 국가의 국적을 가진 감독의 영화가 9편에 이를 정도였으니까요.

칸 영화제가 보여준 ‘약간'의 변화에 대해 국내 언론들은, 다양성을 추구했으나 결국 종착역은 프랑스라는 혹평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주요부문의 상들을 프랑스 영화와 배우들에게 수여했다는 점을 꼬집은거죠. 굳이 영화제에서까지 국적을 들먹이며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조차 평가절하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리모(Thierry Fremaux)

외려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의 다양성이 부족했다는 점이죠. 올해 칸 영화제에 초청된 영화들의 주제나 내용을 봅시다. <디판>, <사울의 아들>, <캐롤>, <램스> 등 초청된 영화들은 이민자, 홀로코스트, 동성애를 중요한 소재들을 다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랑, 가족관계와 형재애, 인간애를 성찰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모두 비슷한 지점에 이르고 있습니다. 때문에 소재보다는 주제의 다양성에 더 방점을 뒀어야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가디언 The Guardian]은  “영화제의 전체적인 퀄리티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가가 엇갈린다”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리바이어던>, <윈터 슬립>, <미스터 터너>, <지미홀>, <폭스캐처>, <와일드 테일즈>, <클라우드 실즈 오브 마리아>, <마미>, <투 데이즈, 원 나잇> 같은 영화들을 볼 수 있었”던 작년 영화제와 비교했는데요. 주목을 끌만한 이야기가 부족했다는 점을 에둘러서 지적했던 것입니다.(2015: Jacques Audiar's Deepan Surprise Winner of Palme d'Or)

그래서 이런 평가를 하는 건 어떨까요. 거장들의 영화를 초청함으로써 오히려 안주하려고 했던 건 아닌가,라는. 평범한 많은 영화보다 흥미로운 영화 한 편을 만나는 일이야말로 영화팬들이 원하는 거겠죠. 변화가 아니라 어쩌면 영화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




지난 9일(프랑스 현지시간) 칸 영화제 사무국은 명예황금종려상(A Palme d'honneur)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아그네스 바르다(Agnès Varda)가 그 주인공입니다. 

명예황금종려상은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작품을 선보였지만, 황금종려상과는 인연이 없었던 감독들에게 주는 상입니다.

영화제 50주년이었던 지난 1997년, <황금종려상 중의 황금종려상>이란 이름으로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을 선정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명예황금종려상을 만들면서 이어져 왔는데요. 2002년 우디 앨런, 2009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리고 2011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받았습니다. 아그네스 바르다 감독은 다섯번 째로 이 상의 수상자가 됐습니다.

영화제 마지막날 아그네스 바르다에게 수상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누벨바그의 할머니

1928년 생인 감독은 프랑스 파리에서 예술사와 사진을 전공했습니다. 전 세계를 돌며 찍었던 사진들로 전시회를 열면서 사진작가로서 이름을 알립니다. 그 후 자연스레 영화 작업에 뛰어들었는데요. 1955년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이라는 영화로 데뷔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누벨바그라는 영화적 기술, 표현방법들을 5년 여 정도 앞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영화제 측 또한 “누벨바그가 시작하기 5년 앞서 만든 이 영화에는 누벨바그를 규정하는 모든 요소가 들어있다. 젊은 세대의 롤모델이자 경계를 무너뜨린 자유정신을 체현한 예술가”라며, 명예황금종려상을 선정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그네스 바르다는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반까지 누벨바그의 전성기를 수놓은 중요한 감독으로서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습니다. 2011년 현재까지 총 50여편에 이르는 단편, 장편, 다큐멘터리, TV 드라마 등을 연출하면서, 여전히 예술에 대한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 주요 필모그래피(장편영화)

1.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La Pointe Courte), 1955
2. 오페라 무페 거리(L’Opera Mouffe), 1958
3. 5시에서 7시까지의 끌레오(Cleo De 5 A 7), 1962
4. 행복(Le Bonheur), 1965
5.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L’Une Chante, L’Autre Pas), 1977
6. 방랑자(Sans Toit Ni Loi), 1985
7. 아무도 모르게(Kung Fu Master), 1987 
8. 낭뜨의 자꼬(Jacquot De Nantes), 1991
9. 시몽 시네마의 101의 밤(Les Cent Et Une Nuits De Simon Cinema), 1995


 주요 수상경력

1. 칸 프랑스 비평가상(1962) -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2. 베를린 은곰상(1965) - 행복
3. 베니스 황금사자상(1985) - 방랑자


 사진출처 : 칸 영화제 공식홈페이지



▲ 제68회 칸 영화제 공식 포스터


올 5월 개최되는 68회 칸 영화제의 공식 포스터가 23일(프랑스 현지시간)에 공개됐습니다. 작년은 주인공인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선글래스를 살짝 내리며 관객을 쳐다보는 <8과 1/2>의 한 장면이 공식 포스터였죠. 올해는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입니다. 

공식 포스터에 사용된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진은 데이비드 시무어(David Seymour)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데이비드 시무어는 국제 자유 보도사진 작가그룹인 매그넘 에이전시(Magnum photos)의 공동 창립자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로버트 카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조지 로저 등도 매그넘을 창립한 멤버들이죠. 

이번 포스터를 만든 작가는 에르베 시지오니(Hervé Chigioni)와 그래픽 디자이너 길 프라피에(Gilles Frappier)입니다. 이들은 작년에 이어 영화배우를 소재로 영화제 포스터를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포스터를 가지고 30초짜리 애니메이션 스팟 영상도 만들었군요.

● 스팟 영상


칸 영화제는 그동안 고전 영화와 전설적인 배우들을 기억하기 위해 2012년부터 배우들의 모습을 공식 포스터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마릴린 먼로, 2013년은 폴 뉴먼과 조앤 우드워드 부부 그리고 작년에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를 등장시켰습니다.


▲ <카사블랑카>에서 '일사 런드' 역을 맡았던 잉그리드 버그만

잉그리드 버그만은 연기로써는 칸 영화제와 인연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1972년 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된 바 있으며, 역설적이게도 칸 영화제가 애정을 가졌던 영화감독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잉마르 베리만, 알프레드 히치콕, 로베르토 로셀리니 등과 많은 영화를 찍었습니다. 로버트 카파와의 연애, 특히 로베르토 로셀리니와의 불륜 등 비난받을 스캔들도 뿌렸구요. 하지만 영화계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이 차지하는 위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칸 영화제 측은 “현대적인 아이콘이자 자주적인 여인상을 구현했고, 두려움을 모르는 여배우이며, 뉴리얼리즘에 있어서 권위를 가지는 독보적인 배우”라고 열렬히 칭송했습니다. 영화제 기간 동안에는 스티그 비요크만이 연출한 <잉그리드 버그만, 그녀만의 언어 Ingrid Bergman, in Her Own Words>라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고 합니다.

또한 올해 9월에는 잉그리드 버그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칸 영화제 측은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는데요. 그녀의 딸인 이사벨라 로셀리니와 함께 스톡홀름, 파리, 런던, 로마, 뉴욕 등 5개 도시를 순회하며, 잉그리드 버그만을 기리는 각종 프로그램을 선보인다고 합니다. 이런 세심한 준비들이 영화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앞서 영화제 측이 바친 칭송의 표현들을 공식 포스터에 써넣으면 마치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 포스터 및 스틸컷 출처 : 칸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네이버 영화




우리나라에 두편의 영화 밖에 소개되지 않은, 그렇게 낯설진 않지만 여전히 미지의 감독. 루마니아 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던 크리스티안 문쥬(Cristian Mungju)입니다. 물론 소위 뉴웨이브를 이끈 루마니아 감독은 문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라자레스쿠씨의 죽음 Moartea Domnului Lazarescu>의 쿠리스티 푸이우, <그 때 거기 있었습니까? A Fost Sau N-A Fost?>의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그리고 <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g>을 남기고 요절한 크리스티안 네메스쿠까지. 2000년대 중후반 칸 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에서 발굴한 루마니아의 영화감독들입니다. 이들의 영화들은 당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초청받아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루마니아 영화, 루마니아 뉴웨이브 영화들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정리해서 올리기로 하겠습니다. '감독열전'이니만큼 크리스티안 문쥬를 소개하는데 집중하겠습니다. 



◈ 성장배경과 영화적 토양 



크리스티안 문쥬는 1968년 루마니아 이아시(Iasi)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아시는 루마니아 북동쪽 몰도바 지역에 있는, 세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감독은 이곳의 이아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몇 년 간 교사와 저널리스트로 활동합니다. 그러던 중 부쿠레슈티 영화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하고, 서른의 나이에 접어든 1998년 졸업하게 됩니다. 크리스티안 문쥬가 영화 연출을 전공하려고 마음먹은 계기는 뚜렷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장한 환경과 교사, 저널리스트로 일했던 과거를 통해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그가 태어난 이아시는 루마니아의 유서깊은 대학인 이온 쿠자 대학(Universitatea Alexandru loan Cuza)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화궁전,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성삼위성당 등이 밀집된 곳이기도 하죠. 교육문화의 도시로서 아시시는 어린 크리스티안 문쥬에게 문화와 예술 등에 쉽게 눈뜰 수 있는 환경이었을 겁니다. 또한 그의 영화에서 보이는 정치적 문법들은 친 누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감독의 누나인 앨리나 문쥬-피피디(Alina Mungiu-Pippidi)는 현재 부쿠레슈티 국립 정치행정학교에서 정치학 교수이자 정치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탈냉전으로 인해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 후반에 앨리나 문쥬는 시민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루마니아 민주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누나의 경험은 갓 20대에 접어든 감독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문쥬의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리얼리즘적 경향, 정치적인 문법과 사회고발적 문제제기 등은 바로 이러한 토양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 새로운 루마니아 영화의 중심에 서다 



1998년 졸업 이후 크리스티안 문쥬는 루마니아에서 촬영한 해외 영화들의 조감독으로 활동합니다. 그러던 중 2002년 <내겐 너무 멋진 서쪽나라 Occident>라는 장편영화로 본격적인 영화감독의 길에 들어섭니다. 그가 감독으로서 인정받는 계기는 그야말로 '느닷없는' 것이었습니다. 2007년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게 된거죠. 그런데 크리스티안 문쥬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이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영화 <내겐 너무 멋진 서쪽나라>는 이미 2002년 칸 영화제에 초청돼 많은 주목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2004년에는 카탈린 미투레스쿠 감독이 <트래픽 Traffic>으로 단편부문 황금종려상을, 2005년에는 <라자레스쿠씨의 죽음>이 '주목할만한 시선' 그랑프리를, 2006년에는 <그 때 거기 있었습니까?>가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해왔던 것이죠. 칸 영화제는 이렇게 루마니아 영화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여왔고, 젊은 감독들이 보여준 새로운 예술적 성과들을 평가해 왔던 것입니다. 그 결과의 하나로 2007년 크리스티안 문쥬는 황금종려상을, 네메스쿠는 <캘리포니아 드리밍>으로 '주목할만한 시선'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이죠. 

2007년 칸 영화제 이후, 영화 매체들에선 앞다퉈 루마니아 영화의 '뉴웨이브'라고 칭하면서 크리스티안 문쥬를 포함한 일련의 작가군에 뜨거운 관심을 보입니다. 특히 리얼리즘 경향의 문쥬 감독은 루마니아 뉴웨이브의 중심에 선 인물로 평가받기 시작합니다. 



◈ 우리가 사는 '오늘'에 대해 계속될 그의 질문들 



세계적으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 중입니다. 지난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튜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으로서 방한한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루마니아에서 영화제작이 어렵다는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광고를 안 찍으면 내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 수 없고 '팔기 위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다행히 나는 이번 영화(4개월, 3주 그리고 2일)가 세계 60여개국에 판매돼 앞으로 8개월 간은 광고를 찍을 필요가 없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했었죠. 루마니아 영화산업은 시장의 규모도 작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상업영화에 치중돼 있고 정부지원도 모자라기 때문에, 리얼리즘 영화를 지향하는 감독이 부딪혀야 하는 벽은 상당히 크고 높을 것입니다. 제작비가 없어 광고 찍어 번 돈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크리스티안 문쥬. 사서 고생하면서도 그가 영화를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이야기를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영화에 대한 하나의 시각을 갖는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내게 영화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영화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해보는 건 중요하다. 

(중략) 

관객은 영리하고 스스로 의사를 결정할 수 있다. 

관객에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시각을 강요함으로써 회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영화의 목표란, 관객에게 스스로 생각하게끔 유도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질문을 길러낼 수 있게 돕는 일이 되어야 한다.


[클로즈업] 나에게 영화란 하나의 연속체다 중에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해답을 찾아갈, 크리스티안 문쥬가 던지는 질문 같은 영화들을 기다려봅니다.



● 필모그래피(연출작)

1. 내겐 너무 멋진 서쪽나라 Occident(2002)

2. 로스트 앤 파운드 Lost and Found(2005) 중 단편 '터키 소녀 Turkey Girl'

3. 4개월, 3주 그리고 2일 4 Month, 3 Weeks and 2 Days(2007)

4. 황금시대 이야기 Tales from The Golden Age(2009)

5. 신의 소녀들 Beyond the Hills(2012)



● 수상경력

1. 2002년 <내겐 너무 멋진 서쪽나라>

- 제43회 데살로니카 국제영화제 관객상


2. 2009년 <4개월, 3주 그리고 2일>

- 제23회 고야상 유럽영화상

- 제42회 전미 비평가협회상 외국어영화상

- 제73회 뉴욕 비평가협회상 최우수 외국영화상

- 제18회 스톡홀름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 제20회 유럽영화상 유러피안 작품상, 감독상

- 제60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 제20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외국어영화상

- 제33회 LA 비평가협회상 외국어영화상


3. 2012년 <신의 소녀들>

- 제65회 칸 영화제 각본상

- 제53회 데살로니카 국제영화제 마이클 카코야니스 상



사진출처 : IMDB


 

지난 9일 켄 로치 감독의 <지미스 홀 Jimmy's Hall>이 국내에서 개봉했습니다. 지난 5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됐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됐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는 감독이 은퇴 전에 만든 마지막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감독인 켄 로치에 대해서는 주저리 주저리 설명드리는 것보단 아래 영상을 보시면 어떤 감독인지 아실겁니다.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죠. 영화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혼란스러웠던 1932년의 아일랜드가 배경입니다.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이자 행복이었던 마을회관을 지키려다 추방 당한 실존 인물 지미 그랄튼의 실화가 바탕입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인 지미는 낡은 회관을 다시 개장해서 다양한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지미스 홀'을 엽니다. 마을 청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게 돼죠. 하지만 목사인 셰리던(짐 노튼)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지미를 ‘빨갱이’로 몰아서 마을에서 쫓아낼 계략을 세우게 됩니다.

 

 

아일랜드 독립이후 신구세대의 갈등, 조약 지지파와 반대파의 갈등이 이 영화에서도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6년 켄 로치에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겨줬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에서의 갈등구조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리밭...>이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고 거칠게 말하고 있다면, <지미스 홀>은 말랑말랑하고 온순한 느낌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켄 로치가 변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것은 말하는 방법의 차이이지, 문제의식의 변화는 아니니까요. 실화라는 정해진 틀에서 나온 이야기니만큼 결론 또한 크게 벗어나지 않아 후반부에는 조금 지루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는 '영화는 극장 스크린이 아니라 극장을 빠져나온 순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말을 다시 일깨워주는 '생각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 지미스 홀 메인 예고편

 



처음으로 소개할 감독은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Andrei Zvyagintsev)입니다. 최근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감독으로, 오랜 침체기에 있던 러시아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소위 러시아 영화라고 하면, 몽타주 기법이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같은 세계영화사 책에나 나오는 몇몇 키워드 말고는 떠오르는게 없습니다. 하지만 즈비아긴체프의 영화들이 서구권의 세계적 영화제들에 초청되면서 러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습니다.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1964년에 러시아 시베리아 지구 노보시비르스크(Novosibirsk)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는 연기를 전공했던 사람입니다. 노보시비르스크 극예술학교에서 러시아 극예술 아카데미(Russian Academy of Theatre Arts)까지 그의 전공은 연기학이었습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1992년부터 영화와 연극을 오가며 본격적으로 배우활동을 했습니다. 주로 단역이었습니다. 그러던 2000년 REN TV의 TV 시리즈 <검은 방 The Black Room>의 에피소드 세 편(부시도, 망각, 선택)을 연출하면서 전공을 바꾸게 됩니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건 그 후 3년이 지난 2003년이었습니다. <리턴 Return>이 바로 즈비아긴체프의 첫번째 장편영화입니다. 그는 장편 데뷔작 한편으로 그해에만 제60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및 미래의 사자상(Lion of Future), 제16회 유럽영화상 유럽영화아카데미 신인상, 제1회 자그레브 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을 수상합니다. 베니스영화제 측은 <리턴>에 대해 "사랑과 상실과 성장을 다룬 우아한 영화"라고 평가했습니다. 대박이 난 뒤 그의 두번째 영화 <추방 The Banishment>이 2007년 칸 영화제에 초청됐고, 황금종려상 후보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주연인 콘스탄틴 라브로넨코(Konstantin Lavronenko)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2011년 세번째 장편인 <엘레나 Elena>로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 부문에 다시 초청받은 그는,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데 이르렀습니다. 올해에는 감독의 네번째 장편 <리바이어던 Leviathan>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됐고 각색상을 받았습니다. 데뷔 11년 동안 단 네편의 장편영화로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제 수상경력이 좋은 영화, 좋은 감독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잣대는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 되구요. 하지만 영화가 지니는 예술적 가치가 평가받고,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영화를 발견하는 수단으로서 영화제와 영화제 수상의 의미가 있을 겁니다.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영화는 전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음은 물론 존재조차 희미했던 러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으니까요. 최근작인 <리바이어던>에 대한 언론들의 평가 역시 지나치게(?) 높았습니다. 영국의 [가디언]은 "홉스와 체호프와 성경을 뒤섞어 놓았고, 놀라운 영상미와 함께 대단히 아름다운 균형미를 선보인다"며 침이 마를 정도로 격찬을 했습니다.(Cannes 2014 review: Leviathan - a new Russian masterpiece) 분명한 건 헐리우드 영화에 잠식당한 러시아 영화계에서 그가 서있는 위치입니다. 그의 영화는 과거 러시아 영화의 특징인 실험적 형식들과 리얼리즘 전통을 계승하면서, 러시아를 넘어 인간 존재라는 보편적인 질문으로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에이젠슈타인, 타르코프스키는 물론 비탈리 카네프스키를 잇는 '러시아 영화의 새로운 장인'으로 거듭날지는 아직 지켜볼 일입니다.


저는 어떻게 어떻게 해서 <엘레나>까지는 봤는데, <리바이어던>이 국내에 상영될 지는 모르겠네요. 꼭 보고 싶은 데 말이지요. 이제껏 네 편의 장편영화 밖에 없지만, 러시아 영화의 현재이자 미래로 평가받는 즈비아긴체프가 만들 영화들과 만들어갈 영화세계가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영화세계에 대해서는 추후 [감독론]에 포스팅하겠습니다.


▶ 사진 출처 및 자료참고 :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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