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주체 되기 과정. 영화는 오랜 시간을 공들여(?), 관객에겐 엄청난 인내를 요구하며 전개된다. 스타일리시하다는 감독의 영화적 형식들도 내내 지루하다. 잔가지가 많아 영화의 핵심에 이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발견한다 해도 쉽게 설명하기 힘들다. 소통하지 않는 독백들이 넘쳐나는데, 이는 전적으로 정신분석적 해석을 필요로 한다.

 

민우는 상상계에 있는 어린 아이다. 자아와 타인을 구분하지 못하며, 현실과 상상 속에서 허구적 자아의 정체성을 부둥켜 안고 있다. 출판사 관계자와 설왕설래 하는 시퀀스에서 그는, 아직 실제계에 들어서지 않은 어린 아이의 행동과 사고를 보이며 '논다'.

 


영화 속 민우가 겪는 존재의 결핍은 이유 없는 구토와 불면증 등 일종의 정신병으로 나타나는데, 상상계에서 거울을 바라보며 결핍을 느끼는 아이와 맥을 같이 한다. 영화 초반 그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신(scene)이 유독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우가 환상 속에서 마주하는 거리엔 '예쁜 여자'들만이 넘쳐 난다. 하지만 미니스커트를 입고 섹시한 몸매를 과시하는 익명의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그의 구토와 정신 이상은 더 심각해진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핍이 자아분열로 이어지던 와중에 '미미'를 만난다.

 


'루팽(Lupin)'이라는 술집은 민우를 상징계와 실제계로 이끄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는 그곳에서 미미를 만나지만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에게 그녀는 시니피앙(기표)일 뿐이다. 그러나 동창의 결혼식에서 민우는 미미에게 '첫사랑'이라는 시니피에(기의)을 부여하고 드디어 인식하기 시작한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를 혼란스러워 하던 민우를 강제하는 것이 루팽의 바텐더다. 그는 양자의 결합(시니피앙+시니피에)을 강요하는 사회의 규칙이자 법이며, 곧 아버지라 할 수 있다.

 

상상계에서 미미는 민우의 무의식에 항상 잠재해 있었으며, 그녀가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그에게 의식되는 순간 소설가 민우는 '언어'를 획득하게 된다.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세상에서 내뱉은 첫번째 말인 미미를 통해 비로소 민우는 상징계를 넘어 실제계로 발을 내딛게 된다.

 


한편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하는 과정엔 희생이 따른다. 어린 아이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겪으면서 어머니에 대한 욕망이 아버지로 대표되는 사회적 규칙과 법으로 전환된다. 여기서 희생되는 것이 바로 모성이다. 영화에서 아내인 은혜는 모성을 상징한다. 민우가 상징계에서 언어를 얻어 소설을 써나갈 때, 그녀가 철저히 배제되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이렇듯 영화가 '한 남자의 주체 되기 과정'을 그린다고 규정했을 때, 영화의 심각한 문제는 형식미가 아니라 캐릭터와 배우에 있다. 등장인물 모두가 그렇지만 특히 민우는 너무나 평면적이다. 민우는 수많은 독백과 방백을 펼쳐 놓는 정신분열적 캐릭터다. 당연히 그의 성향은 독특해야 하지만 적어도 성격변화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 빈 공간은 순전히 배우의 연기가 메운다.

 

이런 복잡한 인물과 그의 내면을 풀어내기엔 강동원은 부족하다. <형사> 이후 오히려 퇴화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영화는 "'이명세'라는 브랜드는 왜 형식적 탐미주의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않는가"라는 물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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