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무어에게 생애 첫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 준 영화입니다. 감독인 리처드 글랫저는 실제로 불치병인 루게릭병을 앓았습니다. <스틸 앨리스>는 감독이 투병 중에 만든 영화입니다.

리처드 글랫저 감독은 지난 3월 10일에 타계했는데요. 줄리안 무어의 여우주연상 수상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힘든 상황을 극복해나가며 영화에 대한 집념을 불태웠던 감독에게 깊이 고개를 숙입니다. 그의 마지막 영화를 재밌게 보기 위한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봤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 신파로 치닫지 않은 드라마

<스틸 앨리스>의 경우, 가끔 뻔한 연출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전 영화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우선 인지언어학 교수가 뇌기능을 상실하는 알츠하이머에 걸린다는 설정입니다. 그리고 유전을 통해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진다는 의학적 사실도 좋은 소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알츠하이머를 대하는 방식입니다. 영화는 알츠하이머를 어느 날 갑자기 ‘발병’한 것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증상을 보이다가 ‘찾아온’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낯익은 손님처럼 ‘찾아온’ 불치병을, 주인공은 혼란과 두려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신 단어를 외우고 메모를 하고 벽마다 포스트잇을 붙입니다. 매일 조깅하는 일상에 몇 가지 일을 ‘더한’ 것 뿐이죠. 굳이 불치병과 사활을 건 싸움은 하지 않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런 과정을 보여주지만 감동과 눈물을 쥐어짜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가 그저그런 신파로 빠지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2. 이기적이고 쿨한 가족상(像)

<스틸 앨리스>에 나오는 가족들은 좀 이상(?)합니다. 이기적이고 쿨합니다. 유전적으로 알츠하이머를 물려받았다는 딸이 앨리스에게 보이는 냉담한 반응. 의사로서 성공이 우선인 아들과 남편. 대학도 안 가고 연극에 빠져 있는 막내딸. 이들은 앨리스에게 연민과 동정은 있지만, 나의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듯 합니다. 병이 점점 악화돼 가는 앨리스를 두고 질병연구소장직을 위해 타지로 떠나려는 남편, 그를 대신해 엄마를 보살피러 온 막내딸이 투덜거리는 장면은 놀라운(?) 가족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일상을 먹먹하게 연기하다

연기만으로도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스틸 앨리스>가 그렇습니다. 상을 받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못 받았다면, 왜 안 줬지라는 의문을 품었을만큼 줄리안 무어는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플랜B’를 노트북에 영상을 남기는 장면, 화장실을 찾다가 바지에 소변을 지리는 장면, 알츠하이머 환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 ‘플랜B’를 실행하는 장면 등등. 많은 씬들에서 확고한 존재감을 자랑합니다. 무엇보다 증상 초기부터 완전히 기억과 언어를 상실하는 시기까지, 앨리스가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꼽고 싶은 장면이 있는데요. 중증을 앓으면서도 막내딸에게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하지 않겠냐”며 타이르던 씬입니다. 영화 초반, 앨리스가 투병하기 전에도 막내딸에게 이렇게 말하던 씬이 있습니다. 병의 유무와 상관 없이 ‘여전히’ 엄마로서 딸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었겠죠. 불치병도 무너뜨릴 수 없는, ‘여전히 앨리스’인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는 듯이 말이지요.


● 한 줄로 말하는 영화 : 빗물처럼 스며든 앨리스라는 존재, 줄리안 무어라는 존재.

● 내 마음대로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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