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7월에 개봉예정인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Terminator: Genisys>의 국내배급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국내 배급을 담당할 줄 알았던 CJ엔터테인먼트가 돌연 지난 15일 배급에서 물러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작됐습니다([단독] 이병헌 '터미네이터5', CJ 배급서 손 뗐다, "검토 중이었던 작품"). 단독보도 기사에서 CJ엔터 측은 "파라마운트(Paromount) 작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CJ엔터가 독점 배급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파라마운트의 영화시장 정책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며, 미국 투자배급사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월드워Z>,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같은 경우에는 다른 배급사에서 맡기도 했다는 사례를 설명했습니다. 

이 기사가 나온 날짜가 하필이면 <터미네이터 5>에서 조연을 맡았던 이병헌과 관련된 소송의 판결이 있었던 날입니다. 그래서 CJ엔터 측은 쓸데없는 의혹을 막고자 배우 이병헌과는 무관한 파라마운트의 결정이라는 점을 부각시켰습니다. 시기가 묘하기 때문에 의문점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Variety] 또한 지난 16일(미국 현지시각) 기사를 통해 이런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Paramount Switches Korean Distributor for Lee Byung hun's 'Terminator: Genisys'). 

그러나 <터미네이터 5>의 배급을 둘러싼 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출연배우 그것도 조연 한 명의 추잡한 스캔들 때문에 영화배급사를 교체할 정도로 시장은 어리석은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법원에서는 그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준 상태입니다. 투자배급사인 파라마운트의 입장에서는 대중의 판단에 맡길 일일 뿐입니다. 한국시장에서 리스크가 발생하겠지만 일부러 호들갑을 떨만큼 그들에겐 큰일은 아닌거죠. 

이병헌의 스캔들은 작년 9월 1일에 터졌고 10월에 1차 공판이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J엔터는 2014년 하반기~2015년 상반기 라인업 중 하나로 <터미네이터 5>를 발표하고 홍보했습니다. CJ엔터가 애초에 출연배우의 스캔들을 문제삼았다면 그 전에 영화배급 문제를 정리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있다가 해를 넘겨서야 손을 떼게 된 겁니다. 아울러 CJ엔터는 2007년부터 파라마운트 제작 영화를 국내에 독점으로 배급해왔습니다. 10여년 가까이 이어온 파트너십을 CJ엔터 측에서 먼저 끊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름 성수기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독점배급하는 권리는 쉽게 버릴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결국 CJ엔터를 배제한 건 파라마운트의 결정이라는 게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국내외 영화매체 등을 보면, 파라마운트가 국내 배급사에 <터미네이터 5>의 판권을 팔았다는 기사를 볼 수 있었는데요. 제일 먼저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지목됐었습니다. 그러나 롯데엔터 측은 "판권 구입과 관련해서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보였습니다(쿠키뉴스, 이병헌 '터미네이터 5' CJ "배급 안 한다" vs 롯데 "판권 안 샀다"). CJ엔터와 달리 롯데엔터는 이병헌 스캔들로 인해 그가 주연한 <협녀>의 개봉일도 확정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롯데엔터가 리스크를 두 배 또는 그 이상을 떠안는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파라마운트는 왜 배급사를 바꾸려고 하는 걸까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꾸는 것보다 자신들이 직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몇 년간 1천만 내외의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늘어나고 있고, 인구 대비 영화시장 규모도 세계 6위에 이를만큼 한국영화시장은 매력적인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20세기 폭스사는 이미 한국영화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신하균 주연의 <런닝맨>, 차태현 주연의 <슬로우비디오> 등을 통해 국내 직접투자배급의 경험을 쌓았습니다. 또한 국내에 테마파크를 건설하기 위한 움직임도 보여주면서 적극적으로 한국시장을 공략하는 모습입니다(20세기 폭스사, 경상남도와 테마파크 건설 양해각서 체결). 

파라마운트도 20세기 폭스에 자극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아시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경기도 안산에 '파라마운트 무비파크'를 설립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배급 논란도 파라마운트가 직접 한국영화시장으로 향하려는 움직임의 하나로 보입니다. 중국이 막강한 자본을 앞세워 먼저 한국시장에 진출한다면, 헐리우드 거대 투자배급사라고 해도 힘겨운 경쟁을 해야 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의도가 <터미네이터 5> 배급논란을 통해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현재로선 한국내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섣불리 접근하진 않겠지만, 20세기 폭스처럼 직접투자배급까지 맡는 영화를 곧 제작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국 영화사 또는 중국 자본의 진출이 한국영화시장의 독과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한국영화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이 글을 '뉴스와 칼럼'이 아니라 '영화산업의 현재와 미래' 카테고리에 담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사진출처 : 다음(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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