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소개할 감독은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Andrei Zvyagintsev)입니다. 최근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감독으로, 오랜 침체기에 있던 러시아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소위 러시아 영화라고 하면, 몽타주 기법이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같은 세계영화사 책에나 나오는 몇몇 키워드 말고는 떠오르는게 없습니다. 하지만 즈비아긴체프의 영화들이 서구권의 세계적 영화제들에 초청되면서 러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습니다.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1964년에 러시아 시베리아 지구 노보시비르스크(Novosibirsk)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는 연기를 전공했던 사람입니다. 노보시비르스크 극예술학교에서 러시아 극예술 아카데미(Russian Academy of Theatre Arts)까지 그의 전공은 연기학이었습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1992년부터 영화와 연극을 오가며 본격적으로 배우활동을 했습니다. 주로 단역이었습니다. 그러던 2000년 REN TV의 TV 시리즈 <검은 방 The Black Room>의 에피소드 세 편(부시도, 망각, 선택)을 연출하면서 전공을 바꾸게 됩니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건 그 후 3년이 지난 2003년이었습니다. <리턴 Return>이 바로 즈비아긴체프의 첫번째 장편영화입니다. 그는 장편 데뷔작 한편으로 그해에만 제60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및 미래의 사자상(Lion of Future), 제16회 유럽영화상 유럽영화아카데미 신인상, 제1회 자그레브 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을 수상합니다. 베니스영화제 측은 <리턴>에 대해 "사랑과 상실과 성장을 다룬 우아한 영화"라고 평가했습니다. 대박이 난 뒤 그의 두번째 영화 <추방 The Banishment>이 2007년 칸 영화제에 초청됐고, 황금종려상 후보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주연인 콘스탄틴 라브로넨코(Konstantin Lavronenko)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2011년 세번째 장편인 <엘레나 Elena>로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 부문에 다시 초청받은 그는,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데 이르렀습니다. 올해에는 감독의 네번째 장편 <리바이어던 Leviathan>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됐고 각색상을 받았습니다. 데뷔 11년 동안 단 네편의 장편영화로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제 수상경력이 좋은 영화, 좋은 감독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잣대는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 되구요. 하지만 영화가 지니는 예술적 가치가 평가받고,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영화를 발견하는 수단으로서 영화제와 영화제 수상의 의미가 있을 겁니다.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영화는 전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음은 물론 존재조차 희미했던 러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으니까요. 최근작인 <리바이어던>에 대한 언론들의 평가 역시 지나치게(?) 높았습니다. 영국의 [가디언]은 "홉스와 체호프와 성경을 뒤섞어 놓았고, 놀라운 영상미와 함께 대단히 아름다운 균형미를 선보인다"며 침이 마를 정도로 격찬을 했습니다.(Cannes 2014 review: Leviathan - a new Russian masterpiece) 분명한 건 헐리우드 영화에 잠식당한 러시아 영화계에서 그가 서있는 위치입니다. 그의 영화는 과거 러시아 영화의 특징인 실험적 형식들과 리얼리즘 전통을 계승하면서, 러시아를 넘어 인간 존재라는 보편적인 질문으로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에이젠슈타인, 타르코프스키는 물론 비탈리 카네프스키를 잇는 '러시아 영화의 새로운 장인'으로 거듭날지는 아직 지켜볼 일입니다.


저는 어떻게 어떻게 해서 <엘레나>까지는 봤는데, <리바이어던>이 국내에 상영될 지는 모르겠네요. 꼭 보고 싶은 데 말이지요. 이제껏 네 편의 장편영화 밖에 없지만, 러시아 영화의 현재이자 미래로 평가받는 즈비아긴체프가 만들 영화들과 만들어갈 영화세계가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영화세계에 대해서는 추후 [감독론]에 포스팅하겠습니다.


▶ 사진 출처 및 자료참고 :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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