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유독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들이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와일드 Wild>도 그 중 하나입니다.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의 부족에 시달리는 건 헐리우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과 실화에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많습니다. 특히 영화로 옮겨지는 실화들은 주로 ‘감동’을 주는 이야기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1. 명상과 성찰을 말하는 실화

<와일드>는 조금 다릅니다. 4,000km가 넘는 태평양 종주길에서 온갖 수난과 고행을 겪은 주인공의 이야기에서는 힐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대자연을 대할 때의 벅차 오르는 감정도 없습니다. 산을 오르느라 헐떡거리는 카메라는 대자연을 아름답게 찍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죠. 좀 거칠게 말하면, 주인공의 경험이 유별나게 특별나거나 드라마틱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와일드>는 더 본질적이고 복잡한 무엇과 마주하게 합니다. 후회하거나 되돌아본다는 게 아닙니다. 주인공은 과거를 떠올리며 자주 욕을 내뱉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새롭게 나아가는 일이죠. '나아가기 위한 멈춤’이 필요한데,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이 태평양 종주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에게 걷는다는 행위는 내적인 명상을 위해 멈추는 행위와 같습니다. 명상과 인생에 대한 성찰. 이 영화가 갖는 다른 힘이란 바로 이것 입니다. 


2. 플래시백과 교차편집


주인공은 태평양 종주길을 혼자 걷습니다.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는 이유가 있죠. <와일드>는 그 연유를 플래시백(flachback)과 교차편집(cross cutting)으로 설명합니다. 현재는 시간순서대로 배열했지만, 과거는 불균형적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오래된 기억의 단편을 보듯이 말이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과거 사건에 대한 극적 긴장감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아무튼 영화는 길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인물들을 중심으로만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과거를 플래시백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면서, 주인공의 내면과 그 변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주인공의 내레이션, 겪었던 사건, 주변인물, 심리, 시점샷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화적 요소들을 통해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다만 과거 회상에서 자주 등장하는, 어머니에 대한 환상 신은 전체적인 흐름을 끊기도 합니다. 주인공의 감정변화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건 이해하겠지만, 다소 작위적으로 연출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3. 인생을 묻다

답보단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기준이라면 <와일드>는 분명 좋은 영화입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은 삶이 어디 있을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하죠. <와일드>는 과거의 아픔과 이별하는 방법을 말하진 않습니다. 홀로 걷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고선 묻죠. 자, 이제 당신은 인생을 어떻게 걸어갈 건가요, 라고 말입니다. 

주인공처럼 태평양 종주길 위에 서야만 하는 건 아닐 겁니다. 지금부터 2시간 동안 <와일드>를 보는 일만으로도, 우리 각자가 걸어갈 방법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인생을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 한 줄로 말하는 영화 :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 같은 인생이 어디 있으랴.

● 내 마음대로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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