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 그 놈, 또 그 놈

모든 것은 사랑, 그 놈 때문입니다. 물론 사랑은 인간의 본능이자 드라마의 원천이죠. 문제는 ‘주구장창’ 사랑 뿐이라는 데 있습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empire of lust’, 욕망의 제국 되겠습니다. 한국어 제목에서는 역설적인 의미로 ‘순수’를 넣었습니다. 영화에는 네 명의 캐릭터가 나옵니다. 사랑에 목마른 자,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 권력을 욕망하는 자, 그냥 발정난 자. 하지만 영화는 이들이 느끼는 사랑과 욕망과 발정의 차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나중엔 영화 스스로도 헷갈리고 있습니다. 쉬운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신파적인 사랑이죠.

때문에 캐릭터는 캐릭터대로,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입체감과 깊이에서 멀어집니다. 좋은 드라마가 설계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음에도, 소위 안전빵(?)을 선택하면서 영화는 많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2. 평면적인 이야기와 캐릭터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법은 기시감이 들 정도로 여러 영화들을 닮아 있습니다. 붉은 색과 흰 색의 대비, 칼의 직선과 춤의 곡선, 팜므파탈, 미인계 같은 극적요소들은 이미 많은 영화에서 다루었던 것들입니다. 이를 표현하는 감독의 ‘드립력’이 영화의 성패를 만듭니다.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도 감독의 표현력에 따라 <색, 계>처럼 인간의 영혼을 건드리는 영화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순수의 시대>의 경우는 관객이 예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이야기와 캐릭터가 전개됩니다. 평범하다는 말입니다. 감독의 연출력과 각본의 한계가 정점에 달하는 시퀀스가 있습니다. 권력에 대한 욕망과 사랑이 부딪히고 싸우는 결정적인 장면입니다. 절정이자 갈등이 폭발하는만큼 짜임새가 무엇보다 중요하죠. <순수의 시대>는 가장 촘촘해야 할 시퀀스에서조차 다소 의아스러운 방향으로 전개합니다. 역사는 그 자체가 스포일러라 색다른 전개를 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역사적 사실을 어느 정도는 따라야 했다고 봅니다. 적어도 그 시퀀스를 그렇게 밋밋하게 만들거였다면 말이죠.


요즘 개봉하는 한국영화들을 보면 일종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재미없고 평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상업적 실패를 피하려고 선택하는 관습적인 이야기 구조. 즉 이렇게 하면 망하지는 않더라, 라는 학습효과를 따르는 것이죠. 과거에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모두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관습에 기대는 일은 한국영화의 힘을 갉아 먹고 상상력의 부재, 다양성의 상실을 가져올 것입니다.

관객은 정답을 바라지 않습니다. 논술, 구술 학원에서 배운 듯한 똑같은 수사법을 원치 않습니다. 창의적인 오답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위플래쉬>가 카타르시스를 주는 이유는, 관객들의 생각을 ‘배반’하는 독특한 오답 때문입니다.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용기있는 상상력을 가진 한국영화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 사족을 붙입니다.



● 한 줄로 말하는 영화 : 인간의 욕망에 관한 물음에 내놓은 준비된 백지 답안

● 내 마음대로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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