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2008년 타계한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의 인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내내 화려해 보이는 패션 뒤로 차분한 재즈 음악이 넘실거립니다.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은 사람은 이브라힘 말루프(Ibrahim Maalouf)입니다. 레바논에서 태어난 트럼펫 연주자로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 중입니다. 아랍음악과 전자음악을 퓨전한 재즈 음악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3년에 자라섬재즈페스티벌에서 연주한 적도 있습니다. 그의 음악이 영화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음악은 노인이 된 피에르가 이브 생 로랑을 추억하는 장면에서 사용된 음악입니다. 이브 생 로랑은 알제리 출신이지만, 인생과 패션과 사랑이 시작된 곳은 파리입니다. 배우들 이름이 자막으로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데요. 이 때 함께 쓰인 음악 역시 'Paris'입니다.

● Ibrahim Maalouf - Paris


이브 생 로랑의 파리 생활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알제리 전쟁 때 군대에 징집되었다가 약물복용으로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합니다. 결국 디오르에서 잘린 그는 동성연인이었던 피에르의 노력으로 1962년 첫 쇼를 갖게 됩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첫번째 패션쇼는, 지금부터 이브 생 로랑의 패션과 인생이 새로운 행진(Défilé)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시퀀스에서 나오는 음악이 'Défilé 1962'입니다. 

● Ibrahim Maalouf - Défilé 1962


매너리즘에 빠진 듯 보이던 이브 생 로랑은 스케치를 하던 어느 날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몬드리안 컬렉션을 창안하게 된거죠. 이 장면에서 나온 음악이 The Chambers Brothers의 'Time has come today'입니다. 여기서부터 영화 속 음악들이 차분한 무채색 재즈에서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음악들, 주로 그 당시에 쓰였던 밴드음악으로 바뀝니다. 한데 피에르와 함께 바이크를 타고 여행하는 신(scene)에서 흐르던 음악만큼은 가장 최근 발표된 노래를 사용했습니다. 

● Patrick Watson - Light house


패트릭 왓슨은 캐나다 출신의 팝가수로 2006년에 [Close To Paradise]로 데뷔했는데, 실험적인 음악과 몽환적인 보컬이 매력적인 뮤지션입니다. 영화에서 그의 'Light House'가 황량한 배경과 함께 정말 잘 어울립니다. 이 외에도 영화 후반부에는 R&B 여성 트리오 The Emotions의 'Blind Alley', 신스팝 밴드 Chromatics의 'Looking For Love', 60년대 밴드 The Bossmen의 'On The Road' 등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들이 사용됩니다. 이런 다양한 색깔을 가진 음악들이 영화 속에서 이브 생 로랑의 패션과 삶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면 러시아 컬렉션을 구현한 마지막 시퀀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시퀀스에서 쓰인 음악은 오페라의 아리아입니다. 영화는 모두 세 곡의 오페라 아리아를 사용하는데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 푸치니의 [토스카] 중에서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그리고 카탈리니의 오페라 [왈리 La Wally] 중 '있거라, 고향 집이여'입니다. 이브 생 로랑 패션의 예술성을 표현하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바로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있거라, 고향 집이여'가 사용됐습니다.

● Maria Callas - "Ebben ? ne andrò lontana" - La Wally


이브라힘 말루프는 영화 초반 겸손하고 수줍음 많은 이브 생 로랑을 표현하기 위해 스며드는 재즈음악을 사용했습니다. 후반부터는 마약, 술, 동성애에 빠진 방탕한 삶과 천재적이고 역동적인 그의 패션을 동시에 보여주려고, 실험적인 것부터 오페라까지 다양한 음악들을 선보였습니다. 영화의 감독인 자릴 레스페르는 이런 영화음악에 대해 “로맨틱하고 섬세할 뿐만 아니라 처연하고 아주 독창적이어서 이 영화에 완벽하게 어울렸다. 또 다른 예술가의 심장처럼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영화에 쓰인 음악이라서가 아니라, 영화가 음악으로 또 한번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던 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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