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은하 글, 손흥주 사진


"최민식의 얼굴은 살아 숨쉬는 지도다. 
눈 옆으로 먹물처럼 번져나간 그의 주름에는 번지수가 매겨져 있다.
긴 세월 거쳐온 연기의 흔적들이,
그의 주름 위에서 하나하나 문패를 달고 고스란히 자리잡고 있다.
그가 연기를 시작하면 문패의 주인들이 저마다 문을 열고 카메라 앞에 선다."
- [최민식: 눈물을 품은 화염방사기] p.15

영화를 감독의 예술이라고들 한다. 맞고도 틀린 말이다. 감독은 영화 전체를 이끌지만 배우는 필름 안에서 영화에 영혼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영화에선 신내린 무당처럼 전혀 다른 사람을 되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들기도 하며, 스크린을 쳐다보는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한다. 그래서 배우는 '신비한 딴따라'다. 글쓴이는 자신만의 시각과 인터뷰와 영화 속 캐릭터 해석을 통해 배우라는 신비함에 다가가고 있다.

이 책은 10년 전인 2004년에 나왔다. 책에는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전도연, 김혜수, 윤여정 등등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한 '배우'들이 등장한다. 조승우, 강혜정, 박해일, 류승범처럼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이제 막 단단하게 채워나가던 '배우'들도 함께 있다. 때문에 이 책은 서로 다른 맛의 '배우'와 '배우'를 버무려 전혀 새로운 맛을 담아낸 접시가 됐다. 10년이 지나도 책이 지닌 결이 여전히 살아있는 이유다. 


"누군가 그의 생김새에 대해 물어온다면 약간 남감해진다. 어떤 배우와 닮았냐고 물어봐도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분명 호감가고 매력적인 얼굴이지만, 입이 크다든지, 코가 오똑하다든지 하는 디테일한 생김새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미남도 추남도 아닌 그의 얼굴엔 분명한 선도, 분명한 악도 찾을 수 없다. "
- [박해일: 선과 악, 추억과 미래의 얼굴] p.134

가장 공감이 갔던 글은 박해일을 묘사한 대목이었다. 나 또한 그를 영화에서 처음 봤을 때, 선과 선 사이의 경계가 흐려진 오묘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형태를 짚을 수 없는,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무한함이었다.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것은 외모지만, 그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연기를 생각하는 내면이었다. 인터뷰를 통해서 고민을 서로 다르게 표현했으나 모두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항상 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는 결론 역시 같았다. 대본을 분석하는 일도, 현장에 맞게 본능적으로 헤쳐나가는 일도, 실생활에서조차 영화 속 인물의 감정을 지니는 일도. 하나같이 연기를 향한 강인한 열정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이런 배우들도 책 속에서 스스로 겁쟁이라는 걸 고백한다. 대중들에게 버려질까 무서워하는가 하면, 대중들이 있기에 내가 있을 수 있다면서 팬들에게 최선을 다하기도 한다. 그들은 카메라 앞에 혼자 서 있는 자신이 아니라,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관객들을 두려워하는 약한 존재이다. 

사람들이 못 알아볼 정도로 그 인물이 되어버리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는 배우들. 미치도록 그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이 신비한 딴따라들나 못 알아보면 전화해 줄래요, 라고 글쓴이에게 말하던 윤여정의 사자후가 크고도 깊다. 




우리시대 한국배우

저자
백은하 지음
출판사
해나무 | 2004-08-25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이 시대 한국 영화를 이끄는 스무 명의 배우에 관한 본격 배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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