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면서 사이드 미러와 백 미러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삶도 억지로 막을 수 없지만, 사이드 미러와 백 미러로 계속 뒤를 돌아봐야 한다. 삶을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우연치 않은 발견에 때론 웃고 눈물 짓기도 한다. 이게 산다는 것의 맛일까.




돈(빌 머레이)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살아왔다. 그렇다고 죽도록 일에 매달리는 체질은 절대 아니다. '왜 이렇게 재미없냐', '따분하고 귀찮다'는 듯, 그는 귀차니즘의 절정 고수가 지닐 수 있는 표정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돈의 '만사 귀차니즘'은 한 통의 편지(그것도 분홍색!)로 조금씩 무너진다. 


 

자신에게 아들이 있다는 청천벽력할 편지에, 예전에 만났던 여자들을 한 명씩 찾아다니는 꼴은 돈의 표현대로 "쌩쑈" 다. 그걸 알면서도 그는 분홍색 편지를 보낸 여자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과거의 자신을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죽은 옛 애인의 묘지에서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마는 것이다.



'쌩쑈'를 끝마치고 돌아온 돈은 겉으론 전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아직 찾지 못한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이라는 따뜻함에 목말라 한다. 배낭여행 온 청년이 자신의 아들인양 먹을 것을 사다준다든지, 인생에 대한 철학을 들려준다든지 하는 행동은 그가 변했다는 걸 보여준다. 


꽃은 시들고 결국엔 죽는다. 돈의 삶도 활짝 핀 시절이 지나고, 이젠 시들어 죽음을 맞을 것이다. 늦게서야 자신과 주변의 것들을 발견하게 된 돈에게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까. 결말에서 보여준 빌 머레이의 표정이 우습고도 아프다.

 

 

● 덧붙임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돈의 유일한 이웃이자 친구는 윈스턴이다. 엉뚱하고 어설픈 이 캐릭터는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영화를 시종일관 위트있게 이끌어준다. 무미건조한 빌 머레이의 표정 연기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윈스턴이 '구워준' 음악 역시 돈의 여행을 따라가는 관객들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왜냐고? "에티오피아 음악은 심장에 좋"으니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