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들려주는 매표소 > 지금, 당신이 봐야 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념>, 기억의 씨줄과 기록의 날줄을 엮어서 (0) | 2015.05.22 |
---|---|
<와일드>, 거친 호흡으로 명상하다 (0) | 2015.04.02 |
<순수의 시대>, 결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0) | 2015.03.29 |
<버드맨>을 즐기는 몇 가지 방법 (0) | 2015.03.17 |
위플래쉬(Whiplash) (0) | 2015.02.09 |
<비념>, 기억의 씨줄과 기록의 날줄을 엮어서 (0) | 2015.05.22 |
---|---|
<와일드>, 거친 호흡으로 명상하다 (0) | 2015.04.02 |
<순수의 시대>, 결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0) | 2015.03.29 |
<버드맨>을 즐기는 몇 가지 방법 (0) | 2015.03.17 |
위플래쉬(Whiplash) (0) | 2015.02.09 |
<스틸 앨리스> 관전 포인트 (0) | 2015.05.27 |
---|---|
<와일드>, 거친 호흡으로 명상하다 (0) | 2015.04.02 |
<순수의 시대>, 결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0) | 2015.03.29 |
<버드맨>을 즐기는 몇 가지 방법 (0) | 2015.03.17 |
위플래쉬(Whiplash) (0) | 2015.02.09 |
<스틸 앨리스> 관전 포인트 (0) | 2015.05.27 |
---|---|
<비념>, 기억의 씨줄과 기록의 날줄을 엮어서 (0) | 2015.05.22 |
<순수의 시대>, 결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0) | 2015.03.29 |
<버드맨>을 즐기는 몇 가지 방법 (0) | 2015.03.17 |
위플래쉬(Whiplash) (0) | 2015.02.09 |
<비념>, 기억의 씨줄과 기록의 날줄을 엮어서 (0) | 2015.05.22 |
---|---|
<와일드>, 거친 호흡으로 명상하다 (0) | 2015.04.02 |
<버드맨>을 즐기는 몇 가지 방법 (0) | 2015.03.17 |
위플래쉬(Whiplash) (0) | 2015.02.09 |
다이빙벨 (0) | 2015.02.04 |
<와일드>, 거친 호흡으로 명상하다 (0) | 2015.04.02 |
---|---|
<순수의 시대>, 결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0) | 2015.03.29 |
위플래쉬(Whiplash) (0) | 2015.02.09 |
다이빙벨 (0) | 2015.02.04 |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 (0) | 2015.02.03 |
● 이 영화를 한줄로 말하면?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을 채찍질하는 하드보일드 서스펜스 '드럼'.
● 내 마음대로 별점 ★★★★
<순수의 시대>, 결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0) | 2015.03.29 |
---|---|
<버드맨>을 즐기는 몇 가지 방법 (0) | 2015.03.17 |
다이빙벨 (0) | 2015.02.04 |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 (0) | 2015.02.03 |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Jodaeiye Nader Az Simin) (0) | 2015.01.07 |
● 이 영화를 한줄로 말하면? 양심과 윤리와 진실도 함께 침몰해버린 그 날.
● 내 마음대로 별점 ★★★
<순수의 시대>, 결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0) | 2015.03.29 |
---|---|
<버드맨>을 즐기는 몇 가지 방법 (0) | 2015.03.17 |
위플래쉬(Whiplash) (0) | 2015.02.09 |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 (0) | 2015.02.03 |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Jodaeiye Nader Az Simin) (0) | 2015.01.07 |
● 이 영화를 한줄로 말하면? 두 눈 똑바로 뜨고 전쟁의 스코프(scope 조준경)를 봐야 하는 이유.
● 내 마음대로 별점 ★★★★
<순수의 시대>, 결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0) | 2015.03.29 |
---|---|
<버드맨>을 즐기는 몇 가지 방법 (0) | 2015.03.17 |
위플래쉬(Whiplash) (0) | 2015.02.09 |
다이빙벨 (0) | 2015.02.04 |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Jodaeiye Nader Az Simin) (0) | 2015.01.07 |
올해들어 처음으로 봤던 영화입니다. 2년 정도 된 영화인데 그 동안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몇 일전 우연찮게 무료로 풀렸길래 냉큼 다운받아서 봤습니다. 네이버 N 스토어에서 선착순으로 무료 다운로드 행사를 하고 있는데요. 8편 중 이 영화를 다운받게 된 겁니다. 아래 이미지를 누르면 무료로 받을 수 있는 URL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맥프로를 쓰는 저로서는 PC용으로 다운받을 수가 없더군요. 해서 고육지책으로 제 아이폰에다 고화질로 다운받았습니다. 물론 네이버 TV앱을 깔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요. 고화질의 용량은 1.4G입니다.
아이폰5에서 고화질로 돌렸는데, 화질이나 자막이 깨져서 나오긴 했습니다. 그래도 뭐 2시간 동안 참고 봤습니다. 고화질이 이 정도면 일반화질이나 최소화는 안 봐도 알겠습니다.
부부는 카메라 앞에서 말다툼을 합니다. 처음엔 부인만 속사포처럼 뭐라뭐라 그러고, 남편은 '너는 짖어라'라는 식으로 먼산만 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나중엔 열변을 토하게 됩니다. 저기나 여기나 부부가 말다툼을 하는 풍경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 암튼 영화는 이런 식으로 궁금증을 유발하며 시작합니다. 이들이 왜,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문제가 뭔지,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결론은 어떻게 될 건지 등등 말이죠.
안 보신 분들이 계실테니 스포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꼭 보시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배우들의 미세한 감정연기나 심리묘사도 볼만하고, 무엇보다 인간이 맞딱드리는 딜레마에 대한 사유가 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너무나도 기묘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종교와 윤리에 관한 이야기들을 섞었는데, 어려운 말을 하면서도 절묘하고 단순하게 풀어나가는 연출도 눈여겨 볼만합니다.
위의 스틸컷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롱테이크로 부부를 비추는 가운데 엔딩크레딧이 올라옵니다. 맞은편에 서서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 이들은 현실에서 어떤 결말을 향하게 될까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영화가 이렇게 열린 결말을 맺게 된 건 어쩌면 감독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여겨집니다.
<순수의 시대>, 결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0) | 2015.03.29 |
---|---|
<버드맨>을 즐기는 몇 가지 방법 (0) | 2015.03.17 |
위플래쉬(Whiplash) (0) | 2015.02.09 |
다이빙벨 (0) | 2015.02.04 |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 (0) | 2015.02.03 |
60년대 전설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가 2000년대 초반에 부활했다. 그가 꿈꾸고 실천하던 민중혁명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한 장의 사진 덕분이었다. 티셔츠와 책 표지를 장식했고 심지어 담벼락에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다. 당당하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내일을 바라보는 뜨거움에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체 게바라가 꿈꿨던 민중혁명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의 삶이나 철학과는 상관 없이, '간지'나는 사진 한 장과 혁명이라는 단어가 주는 '뜨거움'을 소비만 했기 때문이었다. 의미는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는 시대,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다.
영화 <명량>은 성웅 이순신에 의미를 부여하려 노력한다. 두려움에 떠는 인간이자, 모두의 두려움을 부둥켜 안고 죽으러 가야 하는 인간. 죽은 동료들의 환영이 보이고 구선이 불타던 그 때, 배우의 눈동자에 비치던 불길은 절망이라는 인간의 감정이었다. 전투 전에 죽을 먹으며, 승전 후엔 토란을 먹으며 느끼는 살아있음이라는 안도감 또한 인간 이순신을 보여주기 위한 극적 장치이다. 하지만 인간 이순신을 위한 감독의 고군분투는 여기까지다.
영화는 철저히 성웅 이순신을 소비한다. 선체 내부 폭발에도 살아남고, 근접 포사격에서도 살아남는다. 심지어 폭단더미가 옆에서 터져도 영웅과 대장선은 서서히 걷히는 안개 속에서 위용을 드러낸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나 다른 전쟁영화에서나 봤던 장면들이 반복된다. 영웅을 신격화 시키는 작업은 해전 시퀀스 내내 계속된다. 무엇보다 초라한 이순신과 화려한 왜군 장수들을 의도적으로 대비시켰다는 점이다. 최악의 환경에서 믿을 수 없는 승리를 거뒀다는 점을 암시하면서, 영웅이 지닌 비범함을 보여주는 극적장치로 사용했다.
별다른 전략과 전술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난중일기에서조차 '천운'이라고 밖에 쓰지 못했던 미스터리를 영화는 어떻게 풀었을까. 영화를 기대한 이유이자 재미를 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함포사격, 백병전, 임기응변 외에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그 무엇'에 대한 의문은 영화가 끝나도 여전히 물음표를 남긴다. 영화에서 승리를 위한 전략과 전술은 바로 '그 무엇'인데, 그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감독 역시 '천운'이라며 말끝을 흐리고 있다. 난전 속에서 죽은 줄 알았던 영웅과 대장선이 꿋꿋이 살아나자, "대장선이 살아있다"라며 모두 용기를 얻는다. 낭만적인 장면전환으로 얼버무리는 순간 서사는 사라지고 스타일만 남게 된다. 그렇게 의미를 잃어버린 이미지는 결국 소비되는 상품에 그친다.
다큐멘터리처럼 찍어낸 백병전은 분명 이 영화가 가진 특유의 미덕이다. 무섭고 고통스럽고 두려워하는 인간의 표정들을 원샷, 롱테이크로 잡아낸 카메라의 힘이 대단하다. 백병전 시퀀스나 격군들의 땀에 젖은 몸을 보여주는 여러 신들에서, 영화는 영웅보다 병사와 백성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바다 회오리에 빨려들어가는 대장선을 구하고, 폭탄 실은 배에서 죽는 순간까지 장엄하고, 치마를 벗어 흔들며 대장선을 구하는 등 마치 영웅의 수호천사처럼 그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 각자의 이야기는 허술하고 빈약하기 때문에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 <최종병기 활>의 집중력 있는 이야기 구조를 이 영화에서는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이순신은 '천운은 바다의 회오리가 아니라 백성'이라고 말한다. 난중일기 등을 볼 때, 이순신이 백성을 사랑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사실에 더해 신화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고 소비하면서 재생산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이순신이라는 영웅은 우리가 익히 아는 수준에서 그려지고 있다. 인간 이순신을 밝히는 대신 성웅 이순신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은 평범하다 못해 고루했다. 반드시 설명해야 할 지점을 은근슬쩍 넘겨버리면서 영화는 스스로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흘러가고 말았다. 체 게바라의 사진처럼 소비할 대상으로서 이순신과 영화가 남겨진 것이다. 제목처럼 명량이라는 바다에서 벌어진 해전에만 집중했더라면, 거기서 전쟁을 수행하는 인간의 다양한 표정과 성격들을 탐구했더라면, 조금은 다른 색깔의 이순신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영화는 한줄기 일자진처럼 초라하고, 홀로 전쟁을 벌이는 대장선처럼 외로운 석양을 남기고 끝나고 말았다.
<엠(M)> - 자의식이 부른 허세이거나 허(虛)이거나 (0) | 2014.07.14 |
---|---|
브로큰 플라워(Broken Flower) (0) | 2014.07.04 |
쓰리 타임즈(Three Times, 最好的時光) - 허우샤오시엔 (0) | 2014.06.29 |
호들갑을 떨기엔 밋밋한. 라스 폰 트리에의 <님포매니악> (0) | 2014.06.23 |
한 남자의 주체 되기 과정. 영화는 오랜 시간을 공들여(?), 관객에겐 엄청난 인내를 요구하며 전개된다. 스타일리시하다는 감독의 영화적 형식들도 내내 지루하다. 잔가지가 많아 영화의 핵심에 이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발견한다 해도 쉽게 설명하기 힘들다. 소통하지 않는 독백들이 넘쳐나는데, 이는 전적으로 정신분석적 해석을 필요로 한다.
민우는 상상계에 있는 어린 아이다. 자아와 타인을 구분하지 못하며, 현실과 상상 속에서 허구적 자아의 정체성을 부둥켜 안고 있다. 출판사 관계자와 설왕설래 하는 시퀀스에서 그는, 아직 실제계에 들어서지 않은 어린 아이의 행동과 사고를 보이며 '논다'.
영화 속 민우가 겪는 존재의 결핍은 이유 없는 구토와 불면증 등 일종의 정신병으로 나타나는데, 상상계에서 거울을 바라보며 결핍을 느끼는 아이와 맥을 같이 한다. 영화 초반 그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신(scene)이 유독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우가 환상 속에서 마주하는 거리엔 '예쁜 여자'들만이 넘쳐 난다. 하지만 미니스커트를 입고 섹시한 몸매를 과시하는 익명의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그의 구토와 정신 이상은 더 심각해진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핍이 자아분열로 이어지던 와중에 '미미'를 만난다.
'루팽(Lupin)'이라는 술집은 민우를 상징계와 실제계로 이끄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는 그곳에서 미미를 만나지만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에게 그녀는 시니피앙(기표)일 뿐이다. 그러나 동창의 결혼식에서 민우는 미미에게 '첫사랑'이라는 시니피에(기의)을 부여하고 드디어 인식하기 시작한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를 혼란스러워 하던 민우를 강제하는 것이 루팽의 바텐더다. 그는 양자의 결합(시니피앙+시니피에)을 강요하는 사회의 규칙이자 법이며, 곧 아버지라 할 수 있다.
상상계에서 미미는 민우의 무의식에 항상 잠재해 있었으며, 그녀가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그에게 의식되는 순간 소설가 민우는 '언어'를 획득하게 된다.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세상에서 내뱉은 첫번째 말인 미미를 통해 비로소 민우는 상징계를 넘어 실제계로 발을 내딛게 된다.
한편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하는 과정엔 희생이 따른다. 어린 아이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겪으면서 어머니에 대한 욕망이 아버지로 대표되는 사회적 규칙과 법으로 전환된다. 여기서 희생되는 것이 바로 모성이다. 영화에서 아내인 은혜는 모성을 상징한다. 민우가 상징계에서 언어를 얻어 소설을 써나갈 때, 그녀가 철저히 배제되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이렇듯 영화가 '한 남자의 주체 되기 과정'을 그린다고 규정했을 때, 영화의 심각한 문제는 형식미가 아니라 캐릭터와 배우에 있다. 등장인물 모두가 그렇지만 특히 민우는 너무나 평면적이다. 민우는 수많은 독백과 방백을 펼쳐 놓는 정신분열적 캐릭터다. 당연히 그의 성향은 독특해야 하지만 적어도 성격변화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 빈 공간은 순전히 배우의 연기가 메운다.
이런 복잡한 인물과 그의 내면을 풀어내기엔 강동원은 부족하다. <형사> 이후 오히려 퇴화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영화는 "'이명세'라는 브랜드는 왜 형식적 탐미주의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않는가"라는 물음을 남긴다.
<명량> - 영웅을 소비하는 방식 (0) | 2014.12.25 |
---|---|
브로큰 플라워(Broken Flower) (0) | 2014.07.04 |
쓰리 타임즈(Three Times, 最好的時光) - 허우샤오시엔 (0) | 2014.06.29 |
호들갑을 떨기엔 밋밋한. 라스 폰 트리에의 <님포매니악> (0) | 2014.06.23 |
운전하면서 사이드 미러와 백 미러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삶도 억지로 막을 수 없지만, 사이드 미러와 백 미러로 계속 뒤를 돌아봐야 한다. 삶을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우연치 않은 발견에 때론 웃고 눈물 짓기도 한다. 이게 산다는 것의 맛일까.
돈(빌 머레이)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살아왔다. 그렇다고 죽도록 일에 매달리는 체질은 절대 아니다. '왜 이렇게 재미없냐', '따분하고 귀찮다'는 듯, 그는 귀차니즘의 절정 고수가 지닐 수 있는 표정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돈의 '만사 귀차니즘'은 한 통의 편지(그것도 분홍색!)로 조금씩 무너진다.
자신에게 아들이 있다는 청천벽력할 편지에, 예전에 만났던 여자들을 한 명씩 찾아다니는 꼴은 돈의 표현대로 "쌩쑈" 다. 그걸 알면서도 그는 분홍색 편지를 보낸 여자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과거의 자신을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죽은 옛 애인의 묘지에서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마는 것이다.
'쌩쑈'를 끝마치고 돌아온 돈은 겉으론 전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아직 찾지 못한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이라는 따뜻함에 목말라 한다. 배낭여행 온 청년이 자신의 아들인양 먹을 것을 사다준다든지, 인생에 대한 철학을 들려준다든지 하는 행동은 그가 변했다는 걸 보여준다.
꽃은 시들고 결국엔 죽는다. 돈의 삶도 활짝 핀 시절이 지나고, 이젠 시들어 죽음을 맞을 것이다. 늦게서야 자신과 주변의 것들을 발견하게 된 돈에게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까. 결말에서 보여준 빌 머레이의 표정이 우습고도 아프다.
● 덧붙임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돈의 유일한 이웃이자 친구는 윈스턴이다. 엉뚱하고 어설픈 이 캐릭터는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영화를 시종일관 위트있게 이끌어준다. 무미건조한 빌 머레이의 표정 연기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윈스턴이 '구워준' 음악 역시 돈의 여행을 따라가는 관객들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왜냐고? "에티오피아 음악은 심장에 좋"으니까.
<명량> - 영웅을 소비하는 방식 (0) | 2014.12.25 |
---|---|
<엠(M)> - 자의식이 부른 허세이거나 허(虛)이거나 (0) | 2014.07.14 |
쓰리 타임즈(Three Times, 最好的時光) - 허우샤오시엔 (0) | 2014.06.29 |
호들갑을 떨기엔 밋밋한. 라스 폰 트리에의 <님포매니악> (0) | 2014.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