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두편의 영화 밖에 소개되지 않은, 그렇게 낯설진 않지만 여전히 미지의 감독. 루마니아 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던 크리스티안 문쥬(Cristian Mungju)입니다. 물론 소위 뉴웨이브를 이끈 루마니아 감독은 문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라자레스쿠씨의 죽음 Moartea Domnului Lazarescu>의 쿠리스티 푸이우, <그 때 거기 있었습니까? A Fost Sau N-A Fost?>의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그리고 <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g>을 남기고 요절한 크리스티안 네메스쿠까지. 2000년대 중후반 칸 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에서 발굴한 루마니아의 영화감독들입니다. 이들의 영화들은 당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초청받아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루마니아 영화, 루마니아 뉴웨이브 영화들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정리해서 올리기로 하겠습니다. '감독열전'이니만큼 크리스티안 문쥬를 소개하는데 집중하겠습니다. 



◈ 성장배경과 영화적 토양 



크리스티안 문쥬는 1968년 루마니아 이아시(Iasi)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아시는 루마니아 북동쪽 몰도바 지역에 있는, 세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감독은 이곳의 이아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몇 년 간 교사와 저널리스트로 활동합니다. 그러던 중 부쿠레슈티 영화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하고, 서른의 나이에 접어든 1998년 졸업하게 됩니다. 크리스티안 문쥬가 영화 연출을 전공하려고 마음먹은 계기는 뚜렷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장한 환경과 교사, 저널리스트로 일했던 과거를 통해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그가 태어난 이아시는 루마니아의 유서깊은 대학인 이온 쿠자 대학(Universitatea Alexandru loan Cuza)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화궁전,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성삼위성당 등이 밀집된 곳이기도 하죠. 교육문화의 도시로서 아시시는 어린 크리스티안 문쥬에게 문화와 예술 등에 쉽게 눈뜰 수 있는 환경이었을 겁니다. 또한 그의 영화에서 보이는 정치적 문법들은 친 누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감독의 누나인 앨리나 문쥬-피피디(Alina Mungiu-Pippidi)는 현재 부쿠레슈티 국립 정치행정학교에서 정치학 교수이자 정치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탈냉전으로 인해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 후반에 앨리나 문쥬는 시민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루마니아 민주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누나의 경험은 갓 20대에 접어든 감독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문쥬의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리얼리즘적 경향, 정치적인 문법과 사회고발적 문제제기 등은 바로 이러한 토양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 새로운 루마니아 영화의 중심에 서다 



1998년 졸업 이후 크리스티안 문쥬는 루마니아에서 촬영한 해외 영화들의 조감독으로 활동합니다. 그러던 중 2002년 <내겐 너무 멋진 서쪽나라 Occident>라는 장편영화로 본격적인 영화감독의 길에 들어섭니다. 그가 감독으로서 인정받는 계기는 그야말로 '느닷없는' 것이었습니다. 2007년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게 된거죠. 그런데 크리스티안 문쥬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이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영화 <내겐 너무 멋진 서쪽나라>는 이미 2002년 칸 영화제에 초청돼 많은 주목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2004년에는 카탈린 미투레스쿠 감독이 <트래픽 Traffic>으로 단편부문 황금종려상을, 2005년에는 <라자레스쿠씨의 죽음>이 '주목할만한 시선' 그랑프리를, 2006년에는 <그 때 거기 있었습니까?>가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해왔던 것이죠. 칸 영화제는 이렇게 루마니아 영화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여왔고, 젊은 감독들이 보여준 새로운 예술적 성과들을 평가해 왔던 것입니다. 그 결과의 하나로 2007년 크리스티안 문쥬는 황금종려상을, 네메스쿠는 <캘리포니아 드리밍>으로 '주목할만한 시선'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이죠. 

2007년 칸 영화제 이후, 영화 매체들에선 앞다퉈 루마니아 영화의 '뉴웨이브'라고 칭하면서 크리스티안 문쥬를 포함한 일련의 작가군에 뜨거운 관심을 보입니다. 특히 리얼리즘 경향의 문쥬 감독은 루마니아 뉴웨이브의 중심에 선 인물로 평가받기 시작합니다. 



◈ 우리가 사는 '오늘'에 대해 계속될 그의 질문들 



세계적으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 중입니다. 지난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튜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으로서 방한한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루마니아에서 영화제작이 어렵다는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광고를 안 찍으면 내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 수 없고 '팔기 위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다행히 나는 이번 영화(4개월, 3주 그리고 2일)가 세계 60여개국에 판매돼 앞으로 8개월 간은 광고를 찍을 필요가 없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했었죠. 루마니아 영화산업은 시장의 규모도 작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상업영화에 치중돼 있고 정부지원도 모자라기 때문에, 리얼리즘 영화를 지향하는 감독이 부딪혀야 하는 벽은 상당히 크고 높을 것입니다. 제작비가 없어 광고 찍어 번 돈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크리스티안 문쥬. 사서 고생하면서도 그가 영화를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이야기를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영화에 대한 하나의 시각을 갖는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내게 영화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영화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해보는 건 중요하다. 

(중략) 

관객은 영리하고 스스로 의사를 결정할 수 있다. 

관객에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시각을 강요함으로써 회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영화의 목표란, 관객에게 스스로 생각하게끔 유도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질문을 길러낼 수 있게 돕는 일이 되어야 한다.


[클로즈업] 나에게 영화란 하나의 연속체다 중에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해답을 찾아갈, 크리스티안 문쥬가 던지는 질문 같은 영화들을 기다려봅니다.



● 필모그래피(연출작)

1. 내겐 너무 멋진 서쪽나라 Occident(2002)

2. 로스트 앤 파운드 Lost and Found(2005) 중 단편 '터키 소녀 Turkey Girl'

3. 4개월, 3주 그리고 2일 4 Month, 3 Weeks and 2 Days(2007)

4. 황금시대 이야기 Tales from The Golden Age(2009)

5. 신의 소녀들 Beyond the Hills(2012)



● 수상경력

1. 2002년 <내겐 너무 멋진 서쪽나라>

- 제43회 데살로니카 국제영화제 관객상


2. 2009년 <4개월, 3주 그리고 2일>

- 제23회 고야상 유럽영화상

- 제42회 전미 비평가협회상 외국어영화상

- 제73회 뉴욕 비평가협회상 최우수 외국영화상

- 제18회 스톡홀름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 제20회 유럽영화상 유러피안 작품상, 감독상

- 제60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 제20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외국어영화상

- 제33회 LA 비평가협회상 외국어영화상


3. 2012년 <신의 소녀들>

- 제65회 칸 영화제 각본상

- 제53회 데살로니카 국제영화제 마이클 카코야니스 상



사진출처 : IMDB




영화의 섬세한 감성을 연기하는 부분에서 배우들의 수준이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봤던 영화 중에선 개인적으로 <한공주>의 천우희와 <거인>의 최우식이 가장 섬세한 감성으로 연기했다고 봅니다. 둘 모두 의외의 연기였습니다. 특히나 저에게는 최우식이 더욱 그랬습니다. 


최우식은 2011년 드라마 <짝패>에서 아역으로 데뷔했는데요. 드라마에서 보여준 개구쟁이 같은, 천진난만한 아역 이미지 때문이었을까요. 그 이후 맡는 역할이 일정부분 고정돼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각종 드라마에서 조연급으로 얼굴을 알리던 그가 영화를 처음 만난 건 <에튀드, 솔로(감독: 유대얼)>라는 단편에서입니다. 19분짜리 단편영화로, 2012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이 있습니다. 스크리아빈의 에튀드가 일깨우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이 잘 표현된 영화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 단편에서 최우식이 보여줬던 연기는 <거인>의 전주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전체와 어우러지는 표정과 함께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때론 그것을 리드해나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인>을 연출한 김태용 감독 또한 제가 느꼈던 비슷한 부분을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2년 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본 유대얼 감독님의 <에튀드, 솔로>라는 작품에서 처음 보게 된 배우였다. 당시 그 작품 속에서 여리고 순한 얼굴에 비릿하고 거친 눈매가 너무 인상적이었다"라며, 그를 캐스팅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습니다([네이버 영화매거진],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 <거인>의 김태용 감독). 정작 자신은 "아직 김태용 감독님의 그 ‘비릿하다’는 표현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눈을 어떻게 뜨면 그 ‘비릿한 눈’이 되는 건지"라는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요([씨네21] 최우식, <거인>).


<에튀드, 솔로> 이후 첫 장편영화에 캐스팅 되는데요. 그 유명한(?) <은밀하게 위대하게>입니다. 남파 공작원 원류환(김수현 분)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휘갈기는 고딩역할이었습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발산할 수 있는 역할이라기보단 드라마에서 계속해왔던 명량소년 이미지의 연장선에 있는 역할입니다. 때문에 크게 눈에 띄지 않을 뿐더러 영화의 곁가지 같은 느낌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비로소 제대로 된 역할을 만나 날아오를 날개를 얻습니다. 바로 <거인>입니다. 



첫 장편영화 주연을 맡은 <거인>에서 최우식은 캐릭터 이상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쌍커풀 없는 눈에서 뿜어내는 불안과 격정이라는 감정이 스크린을 넘어 생생하게 전달됐습니다. 때로는 야비하고 지질한 모습에 이르기까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재능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클로즈업이 많은 이 영화에서 끝까지 감정선을 유지하며 극을 이끌고 가는 건 대단히 어려운 작업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카메라 안팎에서 캐릭터의 감성에 충실했기 때문에 영화 자체에 힘을 불어넣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스물 다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얻은 첫 주연작에서, 데뷔 이후 자기가 얼마나 차근차근 인내하며 준비해왔는지를 보여줬습니다. 배우로서의 본능을 지니고 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요. 거인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는 진짜 '거인'이 되길 바랍니다.



● 배우 최우식의 필모그라피

1990년생

2011년 드라마 ‘짝패’로 데뷔. 드라마 '폼나게 살거야', 영화 '에튀드, 솔로'

2012년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 ‘특수사건 전담반 TEN’

2013년 시트콤 ‘패밀리’, ‘특수사건 전담반 TEN 2’,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4년 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 ‘오만과 편견’, 영화 ‘거인’, '빅매치'





처음으로 소개할 감독은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Andrei Zvyagintsev)입니다. 최근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감독으로, 오랜 침체기에 있던 러시아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소위 러시아 영화라고 하면, 몽타주 기법이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같은 세계영화사 책에나 나오는 몇몇 키워드 말고는 떠오르는게 없습니다. 하지만 즈비아긴체프의 영화들이 서구권의 세계적 영화제들에 초청되면서 러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습니다.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1964년에 러시아 시베리아 지구 노보시비르스크(Novosibirsk)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는 연기를 전공했던 사람입니다. 노보시비르스크 극예술학교에서 러시아 극예술 아카데미(Russian Academy of Theatre Arts)까지 그의 전공은 연기학이었습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1992년부터 영화와 연극을 오가며 본격적으로 배우활동을 했습니다. 주로 단역이었습니다. 그러던 2000년 REN TV의 TV 시리즈 <검은 방 The Black Room>의 에피소드 세 편(부시도, 망각, 선택)을 연출하면서 전공을 바꾸게 됩니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건 그 후 3년이 지난 2003년이었습니다. <리턴 Return>이 바로 즈비아긴체프의 첫번째 장편영화입니다. 그는 장편 데뷔작 한편으로 그해에만 제60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및 미래의 사자상(Lion of Future), 제16회 유럽영화상 유럽영화아카데미 신인상, 제1회 자그레브 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을 수상합니다. 베니스영화제 측은 <리턴>에 대해 "사랑과 상실과 성장을 다룬 우아한 영화"라고 평가했습니다. 대박이 난 뒤 그의 두번째 영화 <추방 The Banishment>이 2007년 칸 영화제에 초청됐고, 황금종려상 후보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주연인 콘스탄틴 라브로넨코(Konstantin Lavronenko)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2011년 세번째 장편인 <엘레나 Elena>로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 부문에 다시 초청받은 그는,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데 이르렀습니다. 올해에는 감독의 네번째 장편 <리바이어던 Leviathan>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됐고 각색상을 받았습니다. 데뷔 11년 동안 단 네편의 장편영화로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제 수상경력이 좋은 영화, 좋은 감독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잣대는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 되구요. 하지만 영화가 지니는 예술적 가치가 평가받고,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영화를 발견하는 수단으로서 영화제와 영화제 수상의 의미가 있을 겁니다.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영화는 전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음은 물론 존재조차 희미했던 러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으니까요. 최근작인 <리바이어던>에 대한 언론들의 평가 역시 지나치게(?) 높았습니다. 영국의 [가디언]은 "홉스와 체호프와 성경을 뒤섞어 놓았고, 놀라운 영상미와 함께 대단히 아름다운 균형미를 선보인다"며 침이 마를 정도로 격찬을 했습니다.(Cannes 2014 review: Leviathan - a new Russian masterpiece) 분명한 건 헐리우드 영화에 잠식당한 러시아 영화계에서 그가 서있는 위치입니다. 그의 영화는 과거 러시아 영화의 특징인 실험적 형식들과 리얼리즘 전통을 계승하면서, 러시아를 넘어 인간 존재라는 보편적인 질문으로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에이젠슈타인, 타르코프스키는 물론 비탈리 카네프스키를 잇는 '러시아 영화의 새로운 장인'으로 거듭날지는 아직 지켜볼 일입니다.


저는 어떻게 어떻게 해서 <엘레나>까지는 봤는데, <리바이어던>이 국내에 상영될 지는 모르겠네요. 꼭 보고 싶은 데 말이지요. 이제껏 네 편의 장편영화 밖에 없지만, 러시아 영화의 현재이자 미래로 평가받는 즈비아긴체프가 만들 영화들과 만들어갈 영화세계가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영화세계에 대해서는 추후 [감독론]에 포스팅하겠습니다.


▶ 사진 출처 및 자료참고 :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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